농구경기 규칙 발전사

최초의 농구경기 규칙 탄생


농구는 다른 종목과는 달리 규칙이 먼저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규칙에 따라 페어플레이(Fair Play)와 팀플레이를 해야만 이길 수 있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벌칙이 따르기 때문이다. 규칙과 벌칙은 시대가 흐르면서 강도를 더해갔으며 더 정교하게 변했다.

최초의 농구경기가 시작되었을 때는 지금과 같은 체계적인 규칙은 마련되지 않았었다. 1891년 네이스미스는 그 동안 널리 성행하던 여러 가지의 게임을 분석하던 중 우선 풋볼과 같이 스피디하고 스릴 있는 경기로 실내에서도 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풋볼이 가지고 있던 난폭성을 제거하기 위해 골대를 축구하키와 같이 엔드 라인에 둘 것을 생각해냈다. 여기에 어릴 때 바위 위에 돌을 놓고 그것에 돌을 던져 맞추어 떨어뜨리던 일을 생각하여 볼을 던져 넣을 수 있는 바스켓을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체육관 양쪽 끝에 바스켓을 놓고 이 속에다 볼을 던져 넣는 게임을 시도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볼이 바스켓에 들어갈 때마다 게임이 중지되고 바스켓으로부터 볼을 꺼내지 않으면 안 되어 이에 대한 규칙의 개선이 필요하게 되었다. 특히 게임 중에 많은 사람이 바스켓을 포위하게 되어 전혀 볼을 바스켓에 넣어 득점하는 것이 불가능해짐을 보면서 우선 바스켓의 밑을 뜯어 볼이 통과될 수 있게 하였고, 이 바스켓을 체육관 발코니에 달아매어 놓고 하도록 바꾸었다.

한 팀의 인원은 9명으로 한정하였으며, 특히 볼을 손으로 다루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난폭성을 없애기 위하여 볼을 주먹으로 친다든지, 들고 달린다든지, 상대방을 잡거나, 밀거나, 다리를 걸거나 하는 경우를 파울로 규정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한 팀이 이 같은 파울을 연속해서 3회 저질렀을 때는 상대방에게 1골을 허용하는 것으로 하였으며, 여기에 사용하는 볼의 종류도 축구에서 사용하는 구형의 볼을 사용하도록 하고, 경기 시간은 게임 자체의 신체적 부담을 고려하여 15분으로 하는 등 13개의 기본 조항을 제정하였다. 간단한 규칙에 의해 즐겁게 뛰어다닐 수 있으나 과격하지 않은 경기를 진행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벽에 걸린 바스켓에 볼을 던져 넣는 새로운 경기형태를 유지하는데 모든 경기규칙이 맞추어졌었다. 네이스미스가 마련한 최초의 경기규칙은 13개였는데 오늘날 규칙 역시 최초 규칙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다. 최초의 규칙 13개와 그 발전사는 다음과 같다.

 

참조: 농구의 탄생

농구 규칙 발전사, 농구장 전경

최초의 농구경기 규칙 및 발전사


규칙 1. 공은 축구공을 사용하며, 한 손 또는 두 손으로 던질 수 있다.

축구공이 아닌, 정식 농구공을 경기에서 사용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첫 경기가 시작된 지 2년 뒤인 1894년에 축구공보다 좀 더 크고 잘 튀는 공을 사용했고, 계속 규격이 변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가죽공은 대단히 귀했다. 여러 장 가죽을 꿰매 만든 둥근 모양의 겉면에 튜브를 넣고 바람을 넣어 부풀린 것을 농구공으로 사용했다.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이런 농구공 하나 구하기조차 힘들었는데, 1920~1930년대 농구공에 대해서 "명동에 다찌가라 운동구점이 있었다. 그때 이미 일본의 다찌가라 농구공이 나왔는데 그때 돈으로 6원인가 7원이었다"라는 회고가 있다.(한국농구80년사』, 대한농구협회 발간) 이때 6원이면 쌀 한 가마니 값이었다. 1954년에는 '합성수지 고무로 만들어져야 함'이란 규정이 생겼다. 1960~1970년대 무렵, 한국에서는 미군부대에서 사용하다가 시장에서 거래된 미제 농구공을 사용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많지 않아 중고연맹전에서는 각 팀에서 공을 하나씩 뽑아 사용하곤 했다. “그때는 공 잃어버리는 게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 1학년들은 무조건 공만 들고 다녔다.” 1970년대에 선수 생활을 한 농구해설가 이명진의 말이다. 축구공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농구공은 세월과 함께 계속 변하고 있다. 몰튼이 지원하는 국제대회나, 스팔딩이 지원하는 NBA 모두 선수들이 더 나은 경기를 보일 수 있도록 과학적인 분석을 계속하고 있다. 한편 "슛은 한손 또는 두 손으로 던질 수 있다"고 되어있지만, 당시에는 대부분 점프하지 않은 채 두 손으로 슛을 던졌다고 한다. 농구에서 점프슛이 등장한 것은 그보다도 훨씬 뒤인 1930~1940년대부터였고, 처음 도입될 당시 기존 인사들 사이에서 반발이 많이 일었다.

규칙2. 공은 주먹이 아닌 한 손 또는 두 손을 사용해 어느 방향으로 쳐도 좋다.

초창기에는 드리블(Dribble) 개념이 없었다. 패스를 받은 사람은 그 자리에서 곧장 패스를 해야 했다. 드리블은 1896년에 예일 대학교가 공격 수단으로 시험 삼아 도입했고, 1898년부터 정식 채택되었다. 무슨 이유인지 1901~1908년까지 금지된 드리블은 1913년에 공식적인 기술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초창기에 드리블을 한 의도는 전진보다는 공간을 만들고, 공격권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때로는 공을 굴려도 됐다. 논문을 찾아보면 미식축구처럼 전진패스만 가능하게끔 하는 논의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규칙3. 선수는 공을 가지고 뛸 수 없으며 반드시 공을 잡은 지점에서 공을 던져야 한다. 뛰면서 공을 잡은 선수는 그대로 그 자리에 정지할 수 있다.

선수는 공을 갖고 달릴 수 없다. 드리블을 한다면 모를까, 공을 잡고 세 걸음 이상 걸어선 안 된다. 개념은 여전히 똑같다. 그러나 공을 잡은 지점에서 패스하고 공을 던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수비를 따돌리고 공간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체계화되면서 다양한 전술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다양한 전술을 막기 위해 수비가 발전하는 등 긍정적인 연구가 계속되었다.

규칙4. 공은 두 팔이나 신체의 다른 부위를 사용하지 않고 두 손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농구는 미식축구, 럭비, 축구와는 다른 개념, 즉 손만을 사용하는 운동으로 발전을 거듭해갔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지는 이 규칙도 여전히 유효하다. 발에 맞을 경우 공격권이 넘어간다.

규칙5. 상대방을 어깨로 밀거나 붙잡거나, 넘어뜨리거나, 때리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 규칙을 처음 위반했을 때에는 파울한 개로 계산하며, 두 번째부터는 상대팀이 다음 공격을 성공시킬 때까지 경기에서 제외된다. 상대방에게 부상을 입힐 정도로 거칠었다면 경기가 끝날 때까지 교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네이스미스는 즐기기 위한 건전한 운동을 원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코치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이는 페어플레이 정신과도 연결된다. 두 번째 파울을 범했을 때, 상대가 다음 공격을 성공시킬 때까지 뛰지 못하는 것은 마치 핸드볼을 연상케 한다. 이 규칙은 NBA(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출범 뒤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 50/51시즌에 NBA는 마지막 3분간 자유투를 주는 파울이 발생할 경우, 자유투 후 파울을 한 선수와 파울을 당한 선수가 점프볼(양 팀의 두 선수가 심판이 던져 올린 공을 서로 다투어 빼앗는 것)을 했다. 고의적으로 파울을 범해 공격권을 가져가는 일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이 규칙은 52/53시즌에 개선되어 자유투를 던진 선수와 그를 수비하던 선수가 점프볼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처음 규칙이 바뀐 뒤에는 장신 선수가 단신 선수에게 고의로 파울을 가해 점프볼에서 이득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폐해가 생기자, 아예 "선수는 쿼터(한 경기의 시간을 네 등분 했을 때 그 한 부분을 세는 단위)에 파울 2개 이상은 할 수 없다"고 규칙을 정해버렸다. 3개째부터는 아예 해당 쿼터의 남은 시간을 뛰지 못했다. 경기 막판에 무분별한 파울로 경기 시간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적용한 규칙이다. 그렇지만 이 규칙은 얼마안가 없어졌다. 오늘날에는 규칙이 더욱 엄격해져 손을 대거나, 밀거나, 붙잡는 행위를 하면 가차 없이 파울이 선언된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개인파울이 다섯 개(NBA는 여섯 개)면 퇴장 당하고, 개인파울 누적이 팀 파울로 연결되어 팀에도 손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만약 거친 플레이를 한다면 테크니컬 파울(자유투 1개, 두 번째에 퇴장)이나 플레이그런트 파울(자유투, 공격권, 퇴장과 징계) 등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도 과거와 유사한 점이다. 1920년대까지는 팀별로 자유투 던질 선수를 지정할 수 있었다.

규칙6. 주먹으로 공을 치거나 세 번, 네 번 위반하거나 다섯 번 위반은 전부 한 개의 파울이다.

오늘날 주먹으로 공을 치는 것은 어느 상황이냐에 따라 위반 여부가 가려질 것이다. 요즘에는 몇몇 선수들이 묘기를 보여주기 위해 주먹으로 쳐서 날리는 듯한 행위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심판에게 넘길 때 감정이 섞인 나머지 주먹으로 쳐서 공을 넘긴다든가, 관중석으로 날린다면 테크니컬 파울뿐 아니라 리그 사무국으로부터 큰 징계를 받는다. 규칙 위반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개인 파울로 누적될 수도 있고, 테크니컬 파울은 두 개째부터 퇴장으로 연결된다.

규칙7. 상대방이 파울이 없는 가운데 3개 연속 파울을 범하면 그 상대팀에게 한 골을 준다.

지금의 팀 파울과 비슷한 취지의 규칙으로 볼 수 있다.

규칙8. 공을 던지던가, 쳐서 바스켓에 들어갔을 때 골로 인정한다. 또한 공이 바스켓의 가장자리에 멈추었거나 상대방이 바스켓을 흔들었을 때 역시 골이다.

초창기 농구경기에는 백보드가 없었다. 그렇기에 바스켓이 매달린 막대를 흔들어 상대 슛을 저지하는 속임수도 썼다. FIBA(국제농구연맹)의 정식 농구경기에 철판 백보드를 처음 설치한 건 1896년이었고, 1910년경에 목재로 바꾸었다. 요즘처럼 투명한 유리 백보드로 바뀐 것은 '흥행'을 위해서였다. 높은 곳에 앉은 사람들이 백보드 때문에 경기가 잘 안 보인다고 불평하자 백보드를 투명한 재질로 바꾼 것이다. 여기에 덩크가 경기 중에 자주 속출하면서 안전을 위해 유리질이 강화되었고, 탄력 있는 선수들을 위해 백보드 아래쪽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 긁히거나 찍히는 일이 없도록 두꺼운 판을 백보드 밑에 설치했다. 백보드의 등장은 훗날 뱅크슛(백보드를 맞춰서 넣는 슛)이라는 새로운 득점 기술을 탄생시켰다. 또 림에 그물이 생긴 것은 1914년이었다. 지금은 상상이 되지 않지만 초창기에는 바구니에서 공을 꺼냈다. 1914년에야 골대 그물에 구멍을 만들어 공이 골인 되면 관통하게 했다. 한편 공이 바스켓의 가장자리에 멈추는 일은 요즘에는 일어날 수 없다. 그러나 비슷한 예를 골텐딩과 실린더 규칙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골텐딩은 장신 선수들이 키를 이용해서 슛을 마구 걷어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규칙9. 공이 라인을 벗어나 아웃 오브 - 바운스(Out of Bounce)가 되었을 때는 처음 공에 닿은 선수가 코트 안으로 공을 던져 넣는다. 이때 5초 안에 던져야 하며, 시간이 경과되면 공은 상대방에게 넘어간다. 어느 쪽 공인지 분명치 않을 때에는 부심이 그곳에서 똑바로 던진다. 만일 어느 팀이 고의로 게임을 지연시키려 할 때는 부심은 그 팀에게 바이얼레이션('룰 위반'이란 뜻으로 파울에 속하지 않는 반칙)을 적용한다.

오늘날 농구경기와 비슷한 점이 많다. 아니, 거의 고치지 않은 규칙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단지 세월이 흐르면서 NBA는 자체에서 규칙을 개정했는데 다음 규칙을 눈여겨 볼 만하다.
_경기(연장전) 마지막 2분에 공격권을 획득한 뒤 바로 타임아웃을 요청했을 때에는 원래 인바운드 위치 또는 하프코트에서 인바운드 할 수 있는 옵션이 따른다.(78/79시즌)

_공을 인바운드하지 않은 상태에서 2번 이상 연달아 타임아웃을 요청할 경우 2번째 타임아웃부터는 45초로 제한된다.(94/95시즌)

규칙10. 부심은 선수를 심판하며 파울을 기록하고, 연속해서 3회 파울 했을 때는 주심에게 알린다. 부심은 다섯 번째 파울한 선수를 실격시킬 권한을 지닌다.

심판의 역할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다. 1909년에 심판이 1명에서 2명으로 늘었고, 선수들의 덩치가 커지고, 경기가 빨라지면서 심판은 2명에서 3명으로 늘어났다. 처음 심판을 늘릴 때만 해도 협회는 그만큼 인건비가 많이 든다며 반대의견을 피력했지만, 플레이가 갈수록 거칠어지자 88/89시즌 NBA부터 심판 제도를 바꾸었다. 이후 국내농구를 비롯해 세계의 많은 리그가 3심제를 채택하기 시작했다. 또한 파울을 기록하는 것은 더이상 부심의 몫이 아니다. 심판은 파울을 선언할 뿐, 기록원(Score Keeper)이 따로 있어 기록을 정리한다.

규칙 11. 주심은 공을 판정하고, 경기시간을 계측한다. 또 언제골인(Goal in)이 되었는지, 몇 개의 골을 성공시켰는지 계산하며 기타 통상적으로 심판이 행하는 임무를 행한다.

이 역시 결정과 선언은 심판이 하지만 계산은 기록원들이 한다. 또 문제가 있을 때는 사이드라인에 있는 경기운영팀과 상의해서 결정한다.

규칙12. 경기시간은 전·후반 15분씩으로 하고 중간에 5분간 휴식한다.

경기 시간은 많이 변했다. 오늘날 NBA 프로농구는 12분씩 4쿼터이고, 한국 프로농구는 10분씩 4쿼터이다. 국제대회도 이제는 10분씩 4쿼터 제도를 택하고 있다. 미국 대학농구만이 여전히 20분씩 전·후반 경기를 한다. 그러나 타임아웃이나 하프타임 휴식 시간은 각 지역에 따라 바뀌어 왔다. TV 광고와 같은 경제적, 정치적인 이유가 가장 크다.

규칙13. 상대보다 많이 골인한 팀이 승리하며, 동점일 때는 주장의 동의 아래 다음 골을 성공할 때까지 계속한다.

처음에는 골든골(정규시간이나 기간 안에 승부를 가리지 못하고 연장전에 들어간 경우, 먼저 득점하는 팀이승리를 하고 경기를 끝내는 경기방식)과 같은 개념으로 진행된 경기에 연장전 개념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친선경기는 동점으로 끝날 때도 있고, 4쿼터가 아닌 쿼터 개념으로 연습경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 길거리농구 대회에서는 시간관계상 자유투로 승부를 결정할 때도 있다. 최초의 농구경기가 감독이 아닌, 주장의 협의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 이유는 감독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감독은 1949년까지 타임아웃 동안에도 절대 입을 열 수 없었다. 초창기 농구팀 감독은 주로 육상팀 코치들이 맡았다는 후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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